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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몽골 공연을 다녀와서...
이 름 신준하
등록일 04-07-20 15:58 조회수 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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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공연을 다녀와서...


작성자 : 신준하


 2004년 6월 18일 우리 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는 1년여를 준비해온 몽골공연을 떠나게 되었다. 5박 6일에 짧은 일정이었지만 밤낮에 기온차가 크다는 말을 듣고는 여름옷과 가을옷을 여러벌 챙기고 공연복과 생필품을 꾸려보니 여행가방은 벌써 가득 차있었다. 우리 젋은 회원들은 17일 밤에 사무실에 다 모여서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공연 소품박스 및 홍보물 박스 등의 화물을 파악하여 공항에서 일어날 만약의 분실을 우려하여 하나 하나씩 표기도 하고 수량 파악도 확실하게 하였다. 그렇게 밤늦도록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18일 새벽 5시가 조금 덜된 시간 우리를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줄 관광버스가 왔고 시간은 일렀지만 한 분씩 모습을 들어내시는 회원님들의 얼굴은 모두들 기대에 차있었다. 우리는 모든 화물과 가방을 차량에 차곡차곡 정리를 하였다.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고 5시 30분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사무실을 떠나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뒤늦게 버스가 출발하고 따라온 고경호 회원은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택시로 버스를 따라와 탑승하게 되었고 김종흥, 김동표, 윤항수 이수자님들도 버스가 가는 방향에서 탑승을 하여 우리는 모두 보존회 회원 26명, 윤병진 우남식 시의원님, 안동간고등어 직원 3명, 하회마을 주민대표 겸암종손 류상계시를 포함하여 도합 32명 전원 이상없이 차량에 올라 몽골 공연길을 떠나게 되었다. 차량 출발 후 20분쯤 지나 고속도로에 올라가자마자 사무장님인 이규찬 전수조교님의 인사말과 공연일정 및 현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교육을 하고 난후 보존회 회장님인 류동철 회장님 동행하게된 보존회 회원외의 분들을 소개해 주셨다. 버스 출발 1시간 30분이 지나 7시에 우리는 문막휴게소에서 미리 준비해간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일행은 9시 20분이 되어 인천국제공항청사에 도착하였고 화물을 부치고 출국을 위한 수속을 밟아나갔다. 나는 이번 공연간 소품 및 화물을 파악하는 임무를 받아 화물 수량 파악을 철저히 하였다. 어떤 일이든지 내가 해서 실패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 나에 신념이다. 그래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하고 싶었다.
 면세점에서 몽골에 나가서 피울 담배를 사고 우리가 탑승할 37번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항공기 출발 30분전부터 탑승을 시작하였고 이륙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실은 몽골항공기는 출발시간이 30분이 지난 12시 35분이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약된 손님이 탑승을 안했다 하더라도 먼저 한시간씩이나 타고있는 100여명의 손님을 그렇게 기다리게 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우리를 실은 항공기는 인천공항을 무사히 이륙하였고 나는 마음속으로 또 한번의 다짐을 하게 되었다. 군을 전역하고 처음으로 나선 해외공연이라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다시 이곳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내 위치에 맞는 행동으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점심은 기내식으로 간단하게 해결을 하고 나는 계속해서 몽골에서 있을 일정에 대해 머릿속에서 하나씩 그려보고 있었다. 어느덧 기내 방송에서 도착예정을 알리고 난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고층 건물이 아니라 높은 굴뚝이었고 한 개의 시쯤 되어 보이는 도시가 하나 보였다. 우리 항공기 이륙 3시간 25분 이 걸린 오후 3시 50분이 되어서 우리는 몽골의 수도에 있는 울란바토르 공항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항공기가 착륙하면서 하나 더 생각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활주로였다. 너무 많이 파손되어 있고 갈라져있어서 몽골의 수도에 있는 이 공항을 과연 하루에 몇 대에 항공기가 뜨고 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세관을 통과하고 화물 찾는 곳을 찾았다.  화물은 드문드문 나왔고 나는 하나 하나씩 개수를 파악하면서 화물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화물을 내리는 것만 시간이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 이유는 항공기에서 화물을 내려오는 트럭이 하나밖에 없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화물을 가지고 울란바토르 공항을 빠져나왔고 공항 입구에는 우리를 맞이하게 나온 몽골국립극장 단장님과 몽골 일정동안 우리를 도와줄 몽골현지 한국인인 안사장님과 먼저 몽골에 가있던 권사장님과 통역을 해줄 몽골청년 한 명과 여자 세 분이 나와서 우리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씩 나누어주었다. 환영치고는 조금 어설퍼 보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갑자기 밀려오는 더위에 빨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때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왔고 우리는 버스를 보고 조금 놀랐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에 10년은 훨씬 넘게 탔을법한 버스한대가 우리 앞에 선 것이다. 몽골 수도의 중심부에서도 다른 어느 길에서도 한국에서 보았던 자동차들이 2대중 한 대는 보인다는 말이 맞을법하다. 거의가 한국에서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폐차위기를 맞은 자동차들을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조립하여 이곳에 다시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든 짐들을 차량에 실은 후 우리 호텔이 있는 시내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면서 현지인 안사장님이 통역 겸 가이드들을 소개 해주었다. 젤 먼저 나이가 많은 사라누님은 나이가 30대 후반이었고 우리 또래인 아시카(AZHKA)는 22살인데 한국에서 4년동안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걔네(GENE)는 몽골대학에서 한국어과 2학년으로 아직 한국은 와보지 못했지만 상당한 한국어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몽골은 정말 새롭게 보였다. 어른들의 말로는 한국의 50,60년대에 모습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색다른 풍경으로는 도로변에 나무는 모두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보호되어 있었고 산에는 나무한그루 서있지 않았다. 몽골은 기후 때문인지 물이 귀해서 인지 나무가 정말 귀했다. 그늘이라고는 건물의 그늘이나 구름에 의해서 지는 그늘이 전부였다. 도로변에는 굵은 관들이 길을따라 늘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몽골 착륙 직전에 시내 중심부에 보이던 굴뚝과 연관이 있다고 하였다. 난방과 온수는 중앙집중방식으로 시내 중앙에서 물을 데워서 이관을 통하여 각 가정으로 공급된다고 한다. 우리의 버스는 40여분 우리를 태워 달린 뒤에서야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은 거의 우리나라에선 여관수준의 모습이었고 그 주변 또한 경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은 듯 하였다. 호텔 뒤에는 허름한 판자촌이 있었고 옆에는 각각 아파트와 공장분위기에 병원이 있었다. 가방들을 내리고 미리 준비해온 룸메이트와 방 배정을 받았다. 나는 경은이와 함께 4층에 방을 배정 받았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 방이 비좁은 거야 별로 놀랄일은 아니었지만 컴퓨터 모니터보다 작은 TV에 냉장고는 찾아 볼수도 없었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10여분을 틀어 놓은 후에야 녹물이 빠져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는 허전한 방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어서 공항에서 받은 꽃을 유리컵에 담아서 창가에 두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에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자이산 전망대에 갔다. 그곳은 몽골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독일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기념탑이 있었다. 그 기념탑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쉬 가장 돋보이는 것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몽골에 초기 선교사로와서 수많은 성병을 고치고 또한 몽골의 마지막 황제의 성병까지 고친 이태준의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한인회에서 세운 기념탑과 공원이 있었다. 저녁 6시가 되어서 우리는 안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중화요리집에 도착하였다. 탕수육과 오리알 등 첫 몽골에 와서 먹는 음식치고는 중국음식이라 그런지 어느정도 맞았는 것 같다. 그리곤 9시가 되어서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이곳은 밤11시가 되어야 어두워진다고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정말 시계가 9시를 가르치는데도 환하니까 기분이 조금 묘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몽골의 첫날밤을 보낼 계획에 우리 회원들은 모두들 분주해 보였다. 관광과 쇼핑을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4개조로 짜여져서 움직이게 되어있었는데 나는 필기형을 조장으로 8명이 한 조였다. 모두들 함께 술을 마시러 갈려고 했는데 나와 경은이는 첫날밤부터 그렇게 바쁠 것 없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같이 건너온 안동간고등어 직원들과 인사나 할 겸해서 같이 한잔 할 생각이었다. 방에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피곤하다고 나가지 않은 봉교와 영식이와 함께 우리는 여직원들과 인사도 하고 함께 술을 한잔하면서 몽골의 첫날밤을 보냈다.


 창가로 햇살이 들 때쯤에 난 잠에서 깨어났다. 창 밖을 내다보니 해가 늦게 지는 것에 비하여 7시가 조금 넘었는데 햇살이 강하게 내려 쬐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빵과 쇠고기 밥으로 간단히 하고 첫 번째 공연을 위하여 우리는 공연장소로 이동하였다. 10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체육대회 준비가 한창인 어느 운동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한-몽 친선 체육대회를 위하여 몽골의 한인회 사람들과 한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듯한 몽골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개막 행사를 위해서 연습이 한창인 군악대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제일 먼저 있을 사물놀이를 위해서 공연복을 갈아입고 개막행사에 참여하고 몽골 국방부 군악대의 군악 퍼레이드와 국방 대학교에서 준비한 몽골의 춤과 몽골 현지 한국 어린이들의 태권도 시범을 보았다.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군기 빠져 보이는 군악 연주 모습은 현재 이나라의 국방력을 말해주는 듯 하였고 태권도 시범은 어설프긴 했지만 고국을 떠나 먼 타국에 살지만 자식들에게 한국을 가르치기 위하여 한국의 전통 무술인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민들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다.
 다음 우리 사물놀이 공연 차례가 돌아왔다.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관객들과 너무 멀고 단상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했지만 우리의 공연이 시작되고 난후부터는 멀리서나마 우리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공연을 하면서 연주에 집중을 해야했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교민들을 비롯한 관객들을 위하여 동작을 크게 하기 위하여 조금 신경을 썼다. 그렇게 사물놀이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그곳 체육대회 성격에 맞도록 악사가 먼저 앞에서고 뒤에 연희자들이 각자의 춤사위를 보이며 운동장을 도는 형태로 첫 번째 공연을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한 안동간고등어 직원들은 바다와 동떨어져 있는 몽골 현지 교포들에게 고등어를 구워주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채 다 익기도 전에 젓가락 들이대었다. 내가 곁에 갔을 때 그 고등어를 맛있게 먹는 교민에게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유명하고 다른 고등어와는 다른 안동간고등어다"라고 말했을 때 그 교민은 이 귀한걸 가지고 와서 고맙다며 빨리 익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뒤로하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점심은 공연을 하면서 그곳에서 받은 김밥과 컵라면으로 대충 해결을 하였다. 그리고 방 배정이 새로이 되었는데 난 봉교와 영식이와 함께 4층에 배정을 받았다. 대충 다시 짐을 정리하고 비가와서 우리는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몽골의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그곳에는 공룡, 공룡알의 화석을 비롯하여 여러 동·식물, 어패류들의 박제와 여러 종류들의 돌이 있었다. 나는 이상호 예능보유자님 곁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가면서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한시간여동안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몽골국립박물관엘 갔는데 그곳은 시간이 다되어서 들어가서 관람하진 못하고 앞에 있는 슈바트라 광장이라고 불리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념 찰영을 하였다. 그곳엔 붉은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도 서있었고 옆에는 사범대학교 등 내가 몽골에서 지내며 본 건물 중에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버스를 타고 대통령 별장을 구경했는데 대통령 별장이라고 하기엔 마니 허술해 보이는 다 무너져 가는 담벼락과 호위를 위하여 설치해놓은 초소까지 정말 볼품 없었다.
 우리의 저녁식사는 몽골의 한국 대사관님의 초대를 받아 한인이 운영하는 고급 식당에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철갑상어 회와 여러 가지 음식들과 술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시원한 음료와 맥주 덕분에 한 두 시간동안 쉴 새없이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 온 시간이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해가 중천인데 잘 수도 없고 해서 나는 이규찬 전수조교님과 아시카와 함께 약품과 먹을거리를 사러 나갔다. 몽골엔 시뻘건 대낮에도 소히 말하는 뻑치기가 많고 특히 외국인들의 지갑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인지 주위을 둘러가면서 이동하였다. 약품을 사고 마트에 들어갔는데 이곳에 특징적인 점은 마트 입구에 가방을 넣는 케비넷이 있어서 그곳에 모든 가방을 두고서야 마트에 물건을 사러 들어갈 수가 있었다. 맥주와 음료를 사고 안주거리를 사기 위하여 스낵코너에 섰는데 거기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류가 많이 있었다. 그 과자류는 중국으로 수출되어 이곳까지 온다고 하였다. 그렇게 물건을 사고 과일도 사고 해서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또래의 회원들과 함께 맥주를 한 잔하고서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우리가 몽골에서 맞은 3일째 아침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비가 그치도록 기다리다가 결국은 쇼핑과 관광도 하지 못하고 점심식사를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한인 식당이라 갈비탕을 먹었는데 정말 입맛에 맞는 밑반찬은 물론 갈비탕에 갈비는 먹다가 남길 정도로 많이 나와서 정말 맛있게 많이 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몽골정부에서 운영한다는 국영백화점에 갔다. 그곳에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처음으로 많은 걸인들을 보았고 지나가는 길에 발을 붙잡아서 구두를 닦으려는 몽골의 어린아이들과 전화기를 목에 걸고 암표장사치들처럼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이었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의 수도인 이곳도 이런데 우리나라의 3배나 된다는 이 몽골의 다른 도시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몽골 백화점에 들어서 우리는 1층부터 5층까지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남들이 말하는 명품들이 이곳엔 많아 보였다. 통역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중산층이지만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나는 오늘 쇼핑에서 고글을 두 개 샀다. 우리 나라 돈으로 7000원과 3000원 정도 하는 고글을 샀다. 물론 오래 낄려고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허술해 보였지만 자세가 나와 보였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다시 차량으로 집결해서 공연 준비를 위해서 호텔로 돌아가서 의상을 챙겨서 저녁을 먹고 오늘 공연이 있을 몽골 국립극장으로 이동했다.
 맨 먼저 국립극장 입구에서 전체 기념찰영을 하고 난 후 악사들은 공연복을 입고 극장 앞마당에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큰 도로변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차를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공연인 사물놀이를 준비하여 우리 공연에 앞선 몽골 어린이들의 공연이 한참인 무대 뒤편에서 준비를 마치고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한국에서 사물놀이 연습을 꾸준히 열심히 했던 만준이를 봉교 대신에 북잽이로 기용했다. 우리들과 함께 큰 무대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처음하는 만준이는 조금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연습하던 만큼만 해준다면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린이들의 공연이 끝났고 무대에 막이 서서히 오르면서 조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사물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경은이의 점고가 시작되었고 나는 고개를 서서히 들고 관객들을 서서히 살펴보았다. 물론 공연전에 무대나 공연장, 그리고 관객들을 살피고 들어가야 하나 길놀이 다음으로 바로 연결되는 공연인지라 미처 확인을 못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했기 때문에 막이 오른 다음에야 확인 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1층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2층에는 방송국 카메라들이 돌고 있었다. 우리는 관객과 서로를 번갈아 보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웃고 즐기고 또 집중하였다. 그렇게 사물놀이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왔고 우리는 웃으며 그 무대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또다시 이어지는 탈춤 공연 때문에 우리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상투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사물놀이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백정 마당과 파계승 마당, 양반·선비 마당을 하면서 우리 보존회는 몽골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나는 사실 이번 우리의 몽골 공연이 우리 문화를 몽골에 알리고자 하는 그런 큰 의미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몽골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이나 우리 대사를 알아듣고 웃고 즐길 뿐이었다. 99년도에 우리가 일본에 공연을 갔을 때에는  우리의 대사 한마디마다 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벽 쪽으로 쏘아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공연을 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를 좀더 표현하고 우리 문화를 알리려 한다면 현지에서의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공연의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위하여 좀더 준비하고 협조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 뒷풀이는 어느때 보다도 흥겹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몽골국립극장의 뜨거운 열기를 뒤로하고 몽골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자축하기 위하여 회식을 하기 위하여 몽골 시내에 있는 안사장님 가게에 갔다. 음식은 우리가 준비해간 소주와 몽골의 전통주와 중국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모두들 들뜬 분위기에서 회식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몽골에서의 공연에 대하여 만족해하는 것 같았고 특히 우리 회원이 아닌 다른 시의원님들이나 하회마을 주민들 역시 우리 문화를 외국에 나와서 다시 한번 보니까 더욱 자랑스럽고 흐뭇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선생님들과 공연에 대한 대화도 나누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마감할 수가 있었다.
 
 몽골에서 4일째 되는 아침!! 아침부터 부쩍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몽골 테릴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날이다. 국립공원으로 가서 몽골 전통 집인 겔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승마도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열어 정말 잊지 못할 하루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니 회원들 모두가 술렁이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오전에 짐을 꾸려서 호텔 1층에 우리가 소품을 넣어두던 창고방에 가방들은 정리하고 오늘 하루 필요한 짐만 개인 가방에 넣어서 차량에 탑승하였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기전에 우리는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권사장님과 안사장님이 준비해준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모두들 발 맛사지를 받고 줄을 잘선 몇몇은 전신 맛사지를 받았다. 나도 그 운좋은 사람중에 하나였다. 스포츠 맛사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에선 맛사지 받으러 간다고 하면 안마 시술소가 생각나면서 조금은 이상한 생각을 들법도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원하게 맛사지를 받고 우리는 한인회에서 준비한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테릴지로 향했다. 테릴지로 가는 시간은 대략 2시간이 조금 넘는다는 소리에 조금은 지겹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우리에겐 좀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음도 잠시 금방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지라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눈이 꺼풀이 천근만근이 되어서 더 이상 바깥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버스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를 실은 버스는 한시간이 조금 넘게 달리다가 벌판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느 휴게소라도 들어갔을 법하지만 이곳에서 휴게소를 기대할 순 없었다. 모두들 차량에서 조금 떨어져 펼쳐진 벌판을 보며 아주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가 있었고 몇몇 회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는 등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1시간 30분 정도만 가면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목적지는 겔이 있는 숙소일 뿐 테릴지는 거의 다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국립공원도 정말 볼 것이 많겠지만 타국에서 온 우리에게는 지나가는 길하나, 세워진 집 한 채, 펼쳐진 들판에 아무렇게나 풀을 뜯는 소 한 마리까지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테릴지 국립공원으로 들어갔고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해서 차를 내달렸다. 테릴지 국립공원안은 몽골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테릴지 자체가 문화유산이면서 그 자연안에 몽골인들이 생활하는 생활 터전이었다. 산에는 나무 한그루 제대로 서있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멋이 있었고 산 위에는 않은 바위는 누가 일부러 올려놓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균형 맞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눈길을 더 끌었다. 산자락 아래는 드문드문 겔 촌이 있었고 겔 주위로는 양과 소, 말들이 풀을 뜯으며 놀고 그 주위로 개들이 그 가축들의  주인인양 늠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신 없이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은 한시간여를 달려오면서 본 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지만 규모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멈춰선 버스 옆에서 아이들이 당구를 치고 있었다. 당구대는 나무 짝대기를 몇 개 주워 박아 놓구 아무렇게나 막치는 포켓볼 형식의 당구였지만 이것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선물한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방을 배정 받았는데 나는 경은이와 영식이와 함께 강 쪽으로 맨 끝 방을 쓰게 되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승마를 했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의 승마를 돕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구경을 하러 왔는지 모두들 우리 겔 촌의 울타리 밖에 다들 모여서 웅성이고 있었다. 나는 덩치에 비해서는 조금 작은 말을 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말은 잘들었다. "추∼추!!" 하는 우리의 소리에 따라 말은 움직였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강을 건너고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생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는 말이었지만 두려움보다는 재미가 앞섰고 사전 교육은 말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른 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말의 아랫배를 뒷꿈치로 차고 또 채찍을 휘둘렀다. 옷도 밀리터리 스타일로 승마를 하기 위해 신은 전투화까지 완전히 기마병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곳 주민에게 더 빨리 달릴 것을 요구했고 그 주민은 나뭇가지를 하나 꺽어주며 엉덩이를 치라고 했다. 나뭇가지로 엉덩이를 치자 말은 좀 전에 달리던 것과는 다르게 더 빨리 달리기 시작하였고 그때 옆을 지나고 있던 시의원 한 분의 말까지 같이 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우렁찬 "추∼"소리와 함께!! 의원님은 갑자기 미친 듯이 달리는 말을 세우지 못하였고 말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난 말을 세웠고 의원님이 괜찮다는 말을 들은 후 필기형과 함께 도망가는 말을 쫓기 시작했다. 혼자 달아나는 말을 쫓아가기에 우리말들은 너무 작았다. 강을 하나 건너고 또 다시 강을 건너려는 순간 뒤에서 우리 통역 가이드인 아시카가 말을 타고 달려와 자기가 쫓아 갈 테니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지만 말에서 떨어진 의원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나로 인해 그분의 말이 달리고 또 말에서 떨어지기까지 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 10여분쯤 뒤에 뒤따라간 몇몇 몽골인들과 함께 도망간 말은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말을 내몰아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일행들 쪽으로 돌아와 보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조금씩 아파 왔다. 사전 지식도 없이 그렇게 말을 내달렸으니 허리가 아파 오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달리는 말안장에 엉덩이를 제대로 들지 못해서 허리에 충격이 온 듯 하였다. 무릎도 말안장과 부딪히는 안쪽이 살이 벗겨져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말을 타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강가에 내려가 손을 씻고 우리는 양고기를 먹기 위하여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난 뒷다리로 보이는 가장 큰 뼈를 하나 집어서 뜯어먹었다. 모두들 소주를 한잔 걸치며 맛깔스럽게 고기를 뜯었고 나는 그 모습을 놓칠수가 없어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어 추억을 담고 있었다. 물론 양고기를 먹는 적나라한 포즈를 요구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재미있는 표정들과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우리는 테릴지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하여 사물을 가지고 갔었다. 우리는 모여있는 몽골인들과 악기를 두드리며 춤도 추고 팔씨름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해가 저물고 있는 걸 보니 시간이 11시는 되었나보다. 우리는 디스코바로 꾸며진 식당에서 춤도 추고 술을 마시다가 밖으로 나왔다. 다시 겔 안에서 술자리를 열었다. 처음에는 4,5명이 고작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장구가락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대금산조도 들으며 술에 흥건히 취하여 테릴지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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