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작 시 기 : 12세기중엽 고려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 재         료 : 오리나무(목재 탈)
     ○ 용         도 : 하회마을에서 별신굿(別神굿)을 할 때 사용
     ○ 문화재지정 : 국보 제 121호 (1964년3월30일  10종 11개)
                           허도령이 제작한 것은 모두 14개 3개 분실(총각, 별채, 떡달이)
     ○ 소   유   자 : 하회 · 병산동민
     ○ 관   리   자 : 국립중앙박물관
     ○ 제   작   자 : 허도령(전설)

 

각시탈

양반탈

선비탈

부네탈

초랭이탈

 

 

 

 

 

할미탈

이매탈

중탈

백정탈

주지탈(2개)

 

 

하회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있다.
하회에는 처음에 허씨가 고려중엽에 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고(동쪽 화산 자락), 안씨가 그
다음 고려말에는 풍산 류씨가 들어와 지금의 노른자 위치(배-胚-식물의 싹이되는 부분)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동성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라는 전설로 보아 고려 중엽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각씨탈의 머리모양은 타래머리를 가로 얹고 다시 두 귀를 덮으면서 좌우로 똑같이 머리채를 턱 아래까지 드리워 있다.  그 머리채는 다시 한번씩 안으로 돌려 땋은 다음 끝에 둥근고리 모양을 한 채 이어져 있다.
이런 머리모양은 백제불로서 보물 제330호 부여군수리 금동보살 입상의 보발과 대비되는

 

것으로 이를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까지 연대를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또한 분실된 탈중에 별채탈이 있다. 별채는 고려시대에 중국의 독우제도를 모방한 세리였다.
뿐만 아니라 양반 선비마당의 사설 가운데 문하시중이라는 관직명이 나온다.

문하시중은 고려시대의 관직명으로 문하성의 최고 관직으로 종1품에 해당되며, 고려 문종15년(1061년)에 관재의 개혁으로 문하시랑이 개칭되었다가 공민왕5년(1356년)에 관제의 개혁으로 다시 문하시중으로 복원된 관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