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은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여 [물돌이동]이라고도 부른다. 산은 물을 얼싸안고 물은 산을 휘감아 돌아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절묘한 지형을 빚어냈다. 풍수지리로는 '태극형' 또는 마을의 생긴 모양이 물위에 활짝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하며, 배에 짐을 가득싣고 막 떠나려고 하는 형국인 '행주형(行舟形)'이라고도 한다. 또한 다리미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다리미형'이라고도 하는 길지(吉地)이다. 마을 동쪽에 하회의 주산인 화산(花山)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화산의 기운이 나지막한 능선을 이루며 뻗어 내린 곳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도 천하제일 길지로 손꼽을 만큼 이름난 명당(明堂)이다.

 

 

 

 

 

빼어난 지형적인 조건을 갖춘 하회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를 밝혀줄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마을에서 구전(口傳)되는 "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 " 이라는 향언(鄕言)과 하회탈의 제작에 얽혀있는 허도령의 애뜻한 전설로 미루어 대개 고려시대 초기로 알려져 있다.

초기 마을의 형성은 가장 먼저 입촌(入村)하여 터를 잡은 허씨들에 의해서이다. 허씨들은 화산자락의 따뜻하고 양지바른 거묵실골에 자리잡았으며, 그 뒤를 이은 안씨는 향교가 있었다고 전하는 향교골에서 모듬살이를 영위하게 된다.  현재와 같은 하회마을의 모습은 고려말 조선 초에 이르러 풍산 류씨 공조전서 류종혜공이 풍산 상리에서 길지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이다.

마을의 구성은 화산의 얕은 능선을 따라서 길이 나고 그 길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진다. 이 마을의 건축물들은 능선과 길을 등으로 하고 밖으로 향하여 지었기 때문에 동서남북향의 모든 좌향(坐向)이 나타나는 특색을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좌향(坐向)의 건물일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강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 줄 뿐 아니라 앞이 시원스럽게 트이고 강물이 흐르는 풍치를 즐기기 위함에서이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여 그 속에서  동화되고자 하는 선조들의 슬기로움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하회마을은 고건축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살림집들이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세운 거대한 규모의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북촌댁), 염행당(남촌댁) 등의 기와집과 작은 규모에서부터 제법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초가(草家)들이 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학문을 탐구하고 몸과 마음을 닦던 옥연정사, 빈연정사, 겸암정사 등의 정사(亭舍)가 있으며 선현들을 제사하고 인재를 교육한 병산서원과 화천서원등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