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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 미식가 노총각 & 어느 효부 이야기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7-03-03 13:42 조회수 1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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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노총각 & 어느 효부 이야기(글/권태경) <열세 번째 이야기> 미식가 노총각 우연히 손님으로 만나 이젠 오래된 단골이 된 40대 노총각. 직업은 목수, 미장, 페인트칠, 방수 등 자기 말대로라면 거리의 종합예술가란다.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새록하다. 내 모습을 보더니 “뭔가를 하시는 분인 것 같은데....” 하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모자, 수염에 한복까지 입고 택시운전을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궁금증도 풀어주고자 너스레를 떨었다. “모자는 머리에 든 게 적은데 그것마저 증발할까봐 썼고, 수염은 차에 두고 간 물건 쉽게 찾을 수 있고 얼굴 확실하니 착하게 살라고 기르고 다니고,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지사 한복입고 다니고(사실은 양복 한 벌 없고), 택시운전이야 손만 들어도 좋은데 내릴 때 돈도 주지 인사 받지 상사도 없고 손님한테 많이 듣고 배우고 이동거리만큼 많이 보고, 실시간 라디오를 들으니 정치, 경제, 스포츠, 음악, 시사정보에 밝고 모두가 돈 되고 편한 것만 하면 사는 재미도 없고.......택시가 굴러야 세상도 굴러갑니다.” 어느새 분위기가 좋아진 택시 안. 나도 총각에게 물었다. 왜 여태 총각이냐고. 그 사연인즉 10년 전에 결혼해서 1년쯤 살았는데 사치에 낭비, 자기고집이 강한 여자라 많은 위자료를 지불하고 합의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혼자 살려고 한단다. 그런 그에겐 멋진 취미가 하나 있다. 총각은 식도락가다. 시내 개업식당은 거의 행차한다. 공사관계로 장거리를 갈 때면 돌아오는 길에라도 산 좋고 물 좋으면 그 자리에서 내 자리 만들고 유명한 맛집은 꼭 들려야 직성이 풀린다. 한번은 자기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왔는데 깔끔한 상차림, 후식으로 과일 깎는 자세며 커피 타는 솜씨에 반들반들한 싱크대 옆에 뽀얗게 말린 행주며, 살림살이가 여자보다 더 맵시 있었다. 가끔은 말동무, 술친구가 되어 하소연 다 들어주고 그러다보면 나도 꼭 한마디 타령조로 거든다. ‘총각 결혼하면 후회 하네~~ 안하면 더 후회 하네~~’ <열네 번째 이야기> 어느 효부 이야기 몇 해 전 크리스마스이브 때 일이다. 성탄의 기쁨과 송년회 만남 등으로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분주한 거리만큼이나 내 기분도 덩달아 들떴다. 손님이 많으니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니 차 속도는 빨라진다. 이럴 때는 들뜨지 말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느덧 자정이 넘어가고 점촌 쪽 장거리 손님을 모셨다. 돌아오는 길에 읍 소재지 택시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새벽3시의 시골장터에서 한 잔의 커피로 빈속을 달래고 고개 들어 별자리를 보고 있자니 내 영혼이 달래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분위기에 취해있는데 희미한 가로등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 분이었다. “어서오세요.” “이 택시, 촌에도 가나요?” “그럼요!” 행선지는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저씨, 새벽까지 참 수고가 많으시네요.” “예. 어디 다녀오세요?” “네. 친정아버지 기제사 지내고 오는 길이예요.” “아니, 친정에서 며칠 쉬지 않고요.” “시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병환 중이라 시간 맞춰 복용하는 약이 있어 그렇네요.” 다른 가족 분은 없냐고 묻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천천히 들려주는 가족사엔 남다른 사정이 있었다. 결혼한 지 3년 드는 해에 남편에게 중풍이 와서 병 수발 7년하고 먼저 가신지는 몇 년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 있는 아들은 스무 살인데 객지로 떠난 지 몇 해째, 가끔 전화로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얘기한단다.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양식할 정도의 농사를 짓고, 채소도 내다팔고 겨울에는 이웃에 품도 팔고 한단다. 여유 있는 삶을 바랄 처지도 아니지만 시어머니 약값이 부담이라 걱정이라고 한다. 혼자 힘드시겠다고 말하자, 다른 건 몰라도 소문이 무서워서 함부로 행동도 못한다고 말한다. 옷 하나 제대로 못 입고 미장원에 가본지도 오래란다. 그러고 보니 또래 아주머니들에 비해 화장기가 전혀 없다. 장날 볼일이 있을 때도 동네사람 편에 부탁하고, 그리그리 어렵게 살아도 병 수발하던 7년이 행복했다는 말이 이 시대 보기 드문 효부라 생각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인 나는 숙연해진다. 어느덧 동네입구에 도착했다. 차비를 계산하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된다고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하고 가는 아주머니. 새벽 찬바람 맞으며 어둠 속으로 가는 뒷모습을 보며 항상 곁에 있는 건강한 가족의 소중함을 배운다. ‘아주머니, 여태 고단한 삶이였지만 내일의 희망을 빌어 드릴께요. 가난은 불편하지만 불행은 아니기에, 불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행복인 것을......’<안동> 권태경 9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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